흔적은 전부가 되고 말아. 향기도.
[원우드]
: 그라펜 타투 퍼퓸 레몬 사고 나니 받은 샘플 향이었는데 실세는 얘. 원우드가 인기 많은 향이더이다. 이 향과 요즘 밀회 중임. 나랑 강제 밀당하게 된다. 내 주관적인 느껴짐으로는 자연의 향인 듯 자연의 향이 아닌 듯한 기이한 향에 어긋나버림. 꼭 죽은 자의 공간에 와 있는 듯한 공포감도 다가온다. 숲속의 나무 그림자가 제 몸에 섬뜩하게 감겨지는 듯한 서늘함이 덮쳐서일까. 아니면 하얀 안갯비 사이로 피어나는 빗방울들로 하여금 짙어진 향 분위기가 날카롭게 쏘아붙여서일까. 내리 두렵고도 혼잡한 향기 형태로 도사렸다. 엷고 떫은 날것의 무언가 냄새가 나는 법도 한데 자연의 비린 냄새라기보다 영안실 공기 머금어진 거즈 및 연필심 냄새가 먼저 소스라치게 드리운다.
그를 등지고 타닥타닥 장작 태우는 듯 빗소리가 거쳐간 궂은 비냄새, 그 어디쯤으로부터 짓궂게 태운 향불 냄새도 완전히 지울 수 없지만 이내 무덤덤해진다. 내가 내 향에 이만 무너져 무뎌지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여기까진 싸늘한 냄새로 굳어져 서늘한 눈매, 유약한데 질긴 눈빛, 질리도록 끈질긴 손짓을 갈구하는 형체에 마구 눌려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 잇속을 내다버린 단향이 솔솔 여물어가기를 반복. 쨍한 단향은 안 나고 잠시 간과된 인조적인 단향이 속삭이듯 휘젓고 간다. 전체적인 향 묘사는 그럼에도 매혹적이고 관능적임을. 비관적인 첫향을 뚫고 차츰 유해져 향이 곧 자유분방해진다. 구태여 어떤 걸 형상시켜 보자면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자인데 그 속에 질서가 있는 향기를 풍기는 존재가 잡혀진다. 무질서 속 질서 이런 양면성이 존재하는 향기였다.
*본품으로 산 그라펜 레몬 향수도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동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라펜에서 다른 향들도 생겨났으면 좋겠단 생각이.
[레몬]
: 남성 향수라 보편적으로 일컫는 중성적인 향수 계열. 향조가 참 흔하면서도 훈훈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냥 향수 뚜껑을 열고 향 맡았을 땐 싸한 시원함이 무더기로 쏟아지다가 일련의 폭신한 냄새가 한 방울 덧그려진다. 이윽고 포근 따뜻한 머스크향에 파묻힌 레몬향은 옅다. 따라서 큰 그림으로 바라다보면 향이 가볍고 산뜻하게 와닿아진다. 그냥 우리 아빠가 늘 쓰던 향수 냄새와 얼핏 일관성 있으면서도 그걸 상큼함을 덧대어 살살 순화시킨 향같이 맡아졌다.
샘플 용량은 알코올 찌르는 중성향이 더 도드라지더만 본품은 공기를 감싸는 포근함이 살짝 녹진하게 스며들어 본품이 좀 더 좋았다. 향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도수 꽤 있는 레몬 샴폐인 안 감미료를 몇 방울 버무려진 내음이 막상 전신에 흩뿌려지니 언제 그랬냐는 듯 희미하다 못해 사라진다. 아 처음 뿌려줄 적엔 레몬 알코올 섞인 형태로 레몬 사이다에 살짝 못 미치는 레몬 소주? 확 솟구쳐 오르거든 점점 풍부하고 여러 뒤섞인 향기가 난단 말야. 그리고 은연 중에 바닷물 소금 짠기까진 아닌데 바닷물 먹은 물냄새가 있는 듯 없는 듯, 뭐랄까. 중성적인 매력을 이끌어내는 핵심 요소들은 다 들어간 느낌이었다. 근데 또 먹먹하게 습기 돈다고 해서 물기 축축이 찌르르한 냄새는 또 아님. 싸하고 상쾌한 향이 불순하진 않은 향내에 젖어들지 않았나 싶다.
아울러 본품 용기가 몹시 예쁘고 유니크하다. 천문학적이고 기하하적인 모양이라고 히면 과하려나. 그럼 과하지 뭐. 그냥 용기 하나로도 향기 게임은 끝났다. 번번이 감각적인 외관에만 머무르지 않고 향수 뿌리는 과정에서도 향의 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게 실용적인 것도 빠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레몬을 감싸안은 화분 그림이 난 자꾸만 선인장이 생각나는 거 왜일까. 그리고 향수 그림 없는 뒷면을 보고 있으면 향수 끼어진 호스마저 식물에 물 주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 그 유리에 비친 제 모습에 미소가 덧입혀진다. 언뜻 손바닥만한 작은 어항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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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원우드와 레몬, 이 둘을 합치자 뭔가 이미지상으로 스키즈의 현진이 생각난다. 베르사체의 현진 분위기가 떠오르는... 네. 그가 맡아지더라니깐요. 저는. 강렬한 외모 속 섬약한 눈빛을 끌어당기는 그런 오랜 분위기요. 그래서 가련하고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환상을 심어줘요. 그 시간 흐름 뒤로 Jackson Lundy의 Loverboy 노래가 감미로운 선율 타고 밀려올 것만 같다.
(그라펜의 레몬만 향 들이마시면, A-wall의 러버보이 같고. 섞인 둘은 은은하고 은밀함이 더욱이 환상적이게 농짙다. 베르사체 뽀이 그 자체.)
< ++)23.7.28 보너스 리뷰/ 내가 광고를 도안한다는 가정하에 베르사체의 현진 분위기 닮은 모델이 원색의 오픈가를 타고 바람을 쐬다 차 시트 머리 받침대 뒤로 고갤 젖힌 채 내리쬐는 태양에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는 거지. 손 틈 사이 눈부신 햇빛을 온몸으로 들이받으며 과거 회상하는 씬 장면 전환. 그 시절인연엔 사랑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던 이와 왈츠 춤추고 달리고 잠들고, 끝없이 책 종잇장처럼 촤라라 넘겨짐. 그리고선 그의 나지막한 음성 한마디 뱉어냄. 그러니 갑자기 그라펜 타투 퍼퓸 레몬 향수 이미지 똬악 올라가고, 그 향수명을 나른한 영어 발음 쏼라쏼라. 바로 이어서 잭슨 런디의 러버보이 노래 잔잔하게 띄워지는... 광고 한 편 뚝딱. 30초 광고 기승전결 완벽. ㅋㅋㅋㅋㅋㅋㅋ 얼굴이 서사라 가능한 시나리오. 향도 추억도 문신처럼 새기듯, 그렇게. >
이 리뷰는 2023.07.28에 최초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