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두질한 꽃잎으로 유사가죽 만들기
일단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바이레도의 블랙 샤프란과 닮은 구석이 많아요.
완전히 같은 색은 아닌데 보라색 물감에 검정 한 방울 떨어뜨려 명도를 낮췄다는 정도는 비슷한 느낌..
아마 둘 다 바이올렛의 보송하고 서늘한 보랏빛을 레더와 드라이한 우드가 어둡게 감싸고, 향신료가 그 표면을 살짝 따끔하게 긁어놓기 때문인 것 같아요.
블랙 샤프란이 사프란과 라즈베리로 만든 검붉고 마른 보라색이라면 이쪽은 후추와 정향, 수련과 오키드를 섞어 만든 조금 더 투명한 검보라색인 것 같네요ㅋㅋㅋ
가죽향이 주체인 향수를 꽤 많이 맡고 들여봐서 그런가 제 기준에서는 이 정도를 진짜 가죽 자체라고 하기는 어려워요ㅋㅋ
꽃잎과 과육을 압착해 만든 비건 레더가 있다면 꼭 이런 냄새일 듯함. 후추와 정향이 새 가죽 표면처럼 거칠어 바디감같은걸 주고, 수련은 그 사이에 특유 워터리함을 펼쳐 바이올렛의 분내가 모직처럼 답답하게 굳는 걸 막아줘요. 이후 오키드와 은방울꽃이 살집을 보태고 시더와 샌달우드가 걔네를 말리고 다듬어 가죽 비슷한 형태로 굳히는 느낌.
메모 아이리시 레더의 레더 어코드처럼 손에 붙는 장비 느낌이라던가, 손이 많이 탄 의류와 가구 같은 몸집 있는 레더는 아님.
분내 섞인 바이올렛과 오키드가 아직 풋풋하지만 막 성숙해지기 시작한 여성을 만들고 가죽은 그 사람이 처음 입어본 재킷처럼 정말 살짝 얹혀요. 꼭 갓 성인이거나 미성년자인 여성이 가죽소재의 옷을 처음 입어봤고 거울 앞에서 스스로가 낯설어 괜히 자세를 고쳐 잡는 것 같기도 해요ㅋㅋ
그리고 이걸 들인 가장 큰 이유는 단종된 지 한참 된 안나수이 라뉘드 보헴 EDT의 파편을 또 발견했기 때문ㅜㅜ
수련과 오키드의 물기 어린 꽃향이 시더우드-라뉘드보헴은 장미도 비중이 컸고 샌달우드였지만-같은 드라이한 우드노트와 만났을 때 생기는 그 음영진 입체감은 여전히 못 잊어요...
향덕질 비슷한걸 하게 된 근원은 100% 라뉘드보헴에 있음.
이 지경까지 오고 싶었다기보단(너무 재밌긴 함) 비슷한걸 찾고 싶었을 뿐임😭 뭐 이건 진작 포기했고ㅋㅋ
이것도 완전히 닮지는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파편을 찾으면 걍 눈이 돌아감 스테파니브루진-트루동이나 아틀리에코롱-세드르 아틀라를 만났을 때도 그랬음...
정말 충격적인건 맨 위에 언급한 바이레도 블랙 샤프란과 안나수이 라뉘드보헴을 만드신 조향사가 동일인물이었다는거😇 난 본능적으로 그저 좋아서 집은 거였는데 1년 뒤에 앎.. 링크드인에 보이길래 말걸어보려다 그냥 관둠ㅎㅎ 향료회사 부사장 달았던데 십몇년전에 만든 패션향수를 과연 기억은 하실련지..?
이 리뷰는 2026.07.20에 최초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