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끝내 유령마저 잃었다
❗️엥 브랜드 철수가 아니었네요..? 단종도 아니긴 한데 패키지 리뉴얼 전 가죽케이스에 담긴 버전 레시피랑 아예 달라짐ㅠㅠ 사실상 사라진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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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마저 제롬 에피네트 작품이었다는 걸 알고 지우고 다시 쓰는 리뷰입니다..
안나수이 라뉘드보헴 EDT를 20대 초반부터 오래 쓰다 단종으로 떠나보낸 뒤, 비슷한 흔적만 보여도 쫓아다니는 사람임ㅋㅋ 처음 세드르 아틀라를 맡았을 때도 기대하던 향수는 따로 있었는데 이쪽에서 라뉘드보헴의 유령을 보고 한동안 손목에 코를 박은 채 생각이 많아졌었어요..
그러다 결국 본품을 샀고 향수장 애지중지라인에 입성함
이 팀 라인업 : 펜할리곤스 더치스 로즈, 물량 풀릴때 겨우 재구매한 불리 공원에서의 대화, 르라보 떼마차, 구딸 르쉐브르페이유(아모레의 패착으로 국내에서 못 구하게 됨), 그리고 이 친구ㅎㅎ
두 향의 노트를 나란히 놓아보면 제가 왜 그랬는지 너무 적나라하게 보입니다. + 제롬 에피네트의 이 시기 일종의 매너리즘(나는 너무 좋지만)도 있고요.
[라뉘드보헴과의 비교]
라뉘드보헴에 샴페인 시트러스-과일 그자체보단 이후 따라올 무언가에 광택감과 탄산을 주는-가 있었듯 세드르 아틀라의 레몬과 베르가못이 있고, 블랙베리는 블랙커런트가 어느정도 똑같은 역할로 대체되어 맡아짐.
중간의 로터스와 장미는 재스민과 살구로 바뀌었지만 모두 엷고 반투명한 꽃물과 단맛을 만들고,
오우드와 시더가 있던 자리에는 아틀라스 시더/파피루스/베티버라는 더 바싹 마른 목재가 서 있음. 패출리와 앰버의 어두운 볼륨감도 화이트 앰버라는 훨씬 투명한 형태로 남아 있고요. 바닐라 오키드의 옅은 단맛은 살구와 재스민이 색만 희미하게 이어받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식의 비교와 일치하는 정도는 '스테파니 브루진-큐피동'도 동일.
[전체적 리뷰]
처음에는 레몬과 베르가못이 차갑고 밝은 빛을 켜고, 그 아래로 블랙커런트 특유의 검푸른 과일향이 떠올라요. 과즙이 선명하거나 새콤달콤한 타입은 아니고, 색이 빠진 검은 열매를 닝닝한 물에 담가둔 듯한 단향임. 내가 좋아하는 산전수전 다겪은 해체되고 뭉그러진 프루티ㅋㅋ
살구와 재스민도 꽃이나 과일로 또렷하게 튀어나오기보다 그 물에 흐릿한 유백색을 더하는 정도예요.
뒤에서는 시더와 파피루스, 베티버가 그 물기를 바싹 마른 골격으로 붙잡습니다. 제목은 시더지만 연필이나 새 목재보다 물이 얕게 고인, 혹은 호수에 침전된 오래된 나무 상자가 떠올라요. 이 검보랏빛 수분과 투명한 단맛, 마른 목재의 대비가 제가 라뉘드보헴에서 사랑했던 모든것과 너무 닮았음ㅠㅠ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세드르 아틀라에는 라뉘드보헴의 장미와 수련, 오우드가 만든 꽃의 존재감과 검은 그늘이 없어요. 여기에 장미와 수련이 풍성하게 피고 오우드가 아래로 조금만 더 내려앉으면 거의 그 세계가 완성될 것 같음 오래된 생각임 ㅇㅇ
이 향에는 꽃이 사라진 뒤의 기후만 남아 있음. 그래서 대체품이라기보다 가끔 각도가 맞을 때 과거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유령 같아요. 코롱 정도의 지속력마저 유령같음...
[제롬 에피네트]
그리고 몇 년이나 지나 라뉘드보헴 EDT와 이 향이 같은 조향사 제롬 에피네트의 작품이었다는 걸 알고 진짜 입을 틀어막음ㅋㅋ 워낙 다작해오신 분이라고 쳐도 진짜 아..
노트표를 비교하며 억지로 닮은 점을 찾아낸 것도 아니었음
【 밝은 시트러스가 검보랏빛 과일을 비추고
그 과일을 시럽으로 졸이지 않은 채 엷은 액체 안에 띄운 다음
마른 목재와 앰버로 외곽을 잡는 방식 】
이게 우연이 아니고 같은 인간이 만든 거였다는거.. 바이레도 블랙 샤프란도 '큰 틀에서 보면' 마찬가지의 구조임.
향수를 오래 기억한다는 건 특정 노트를 퍼즐조각마냥 뜯어 인식하기보다 조향사의 리듬?같은걸 후각으로 외우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향수 자체만 보면 완벽한 제 취향(특히 지속력 부분이)은 아니지만 애진작에 결국 본품을 들임 아니 사실 처음 맡을때부터 이렇게 될 거란걸 알았어ㅋㅋ
그저 라뉘드보헴 대체품 정도라기보다 제가 푹 빠져든 그 세계가 기억 속에서 미화된 착각만은 아니었다는 증거물로요.
[푸념]
그런데 이것마저 브랜드 철수도 모자라 단종이라니... 내 취향이 대중성과 자꾸 엇갈리는 건지 브랜드들이 제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거두어가는 건지 이쯤 되면 양쪽 모두 조금 원망스러울 지경임. 관세따위 신경 안쓰고 스테파니브루진 큐피동 100ml 주문함 이것도 다써가는지라ㅠㅠ
이 리뷰는 2022.10.23에 최초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