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 합의된 향ㅋㅋ
내가 싫어하는 남자스킨/쉐이빙폼, 그리고 내 기준에서는 전혀 '물향'이 아닌데 통상적으로 남성 아쿠아틱 향수라 부르는 그 전형적인 향이에요ㅋㅋㅋ
이름에 Green이 붙어 있고 실제로 민트, 버베나, 갈바넘, 바이올렛, 오크모스 같은 초록초록 재료가 여럿 들어가지만 이상하리만치 식물의 몸은 안 보여요.
내가 좋못사하는 줄기를 꺾고 뭔갈 짓이긴 냄새도 수액도 젖은 흙도 없음. 기존 푸제르 문법에 초록색이라는 관념을 옷에 다림질해서 입힌 향에 가까워요ㅋㅋ
좋게좋게 말해서 민트는 상쾌함이 되고 라벤더와 제라늄은 단정한 그루밍으로, 우드와 용연향 계열은 잘 차려입은 사람의 윤곽으로 정리됨
물도 마찬가지임...
제가 좋아하는 물향은 비가 식물을 적시거나 소금기가 목재와 피부에 스미고 젖은 모래나 해초처럼 물이 다른 무언가에 실제 사건을 일으키는 향인데 이쪽의 아쿠아틱은 그보다는 'freshness code'에 가까워요. 무엇하나 젖어 있진 않은데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인상만 아주아주 능숙하게 전달함.
그래서 못 만든 향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오히려 너무 잘 합의된 향 같음. 모든 재료가 한목소리로 "깔끔하고 자신감 있고 잘 단장한 남자"를 만드는 데 동의한 느낌이에요.
실제로 크리드가 현행 설명에서 잘 재단된 정장 같은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는데, 저한테는 "네네 단정하신 건 알겠는데 어쩌라고??" 에서 끝남ㅋㅋ
그리고 너무 익숙해요.
향수 딸래미가 사드려도 안 쓰는 울 아부지도 스킨로션만 발라도 이런 계열의 냄새를 냈던 기억이 있음.
그런데 이게 단순히 크리드가 흔한 남자스킨 냄새를 비싸게 파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이런 프레시 남성향 템플릿이 워낙 성공해서 이후 수십 년간 향수 스킨 샤워제품이 계속 이 계열과 아류향을 퍼다 썼고 그 결과 지금 와서는 원류에 가까운 고가 향수 쪽이 오히려 너무 익숙하게 느껴지는 어떤 역설이 된거라 봐야..
그니까 20세기에 혁신적이었던 디자인을 2026년에 박물관에서 보면 역사적 가치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몇백만원 주고 내 집에 들이고 싶은 건 또 별개의 문제잖아요. 따악 그런 느낌.
잔향에서 용연향 계열의 깊고 매끈한 부분만 남을 때는 꽤 좋아요. 그런데 어디까지나 좋은 부분을 착즙한거.. 잔향이 앞선 그루밍 문법을 뒤집거나 막 변주된 느낌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 리뷰는 2026.09.25에 최초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