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는 늘 황홀해
보아라. 전설이 될 그 순간. 네이처리퍼블릭 미니미 퍼퓸 핸드크림 세트가 들이닥치길래 구경하다 훌훌 털고 이걸 발견함. 바디 로션/크림 이미 충분해 되도록 안 사려 했는데 자꾸 눈에 들어오더라 이게ㅎㅎ; 일단 딱 봐도 바틀 디자인도 매력적이게 아름답잖아요. 자고로 향수는 향수병도 좀 시각적으로 끌려야지 않겠어? 퍼퓸 바디 제품도 매한가지.
시간의 개념을 도입해 시각적인 디자인과 더불어 하루 일부 시간을 뜻하는 특정 색감 덕분에 이 제품은 어떤 향이 날지 더욱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더 나아가 마치 바실리 간딘스키나 몬드리안 화가 작품으로부터 영감 받은 듯한 감각적인 기하학 디자인도 좋은데 원형 시계와 시간을 나타내는 각선이... 원초적인 대칭을 이룬 그 선과 면이 안정감 있어 그 시간대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동시에 안겨다주는 것만 같다.
쌀쌀한 밤 공기 흔들리며 떠다니는 무수한 포근한 향들이 온통 지배적으로 덮침.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각종 우드 냄새를 비롯한 블랙페퍼 향이 알싸하게 적막감을 깬다. 향이 달아나는 기척도 없이 시간 감각 잃어버린 기분처럼 길게도 파고든다. 저 극과 극 향의 균형감이 의외로 맞아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중심이 잘 잡힘. 딥다크 향과 비슷한 예로 타입넘버 소울워터가 존재하나 소울워터 향은 스산하고 축축한 수증기 향이 적적하게 깔리면서 홀연히 사라지는 향 길 방향성이 달랐다. 대신 맵싸함은 그대로. 주된 향 기반은 둘 다 일관적인 걸로 맡아진다. 등불 타는 잿더미 냄새도 점점 더.
또한 딥다크 향기를 타고 잠에 든다면, 우드로 만든 침대에 가죽 침구 매트가 둘러싸여져 있고 가죽 베개와 가죽 이불을 꼭 껴안고 어둑한 배경 속 은은한 조명만이 누군갈 비추는 모습이 그려진다. 저 너머 그 작은 빛에 의지한 채로. 정작 그 누군가는 푸른 은하수 아래 검푸른 바다가 일렁여 붕 뜨는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질걸. 뎁다크가 향하는 시침과 초침이 울렁이는 설렘과 낭만이 없다가도 있을 시간대이니만큼 말이다.
아, 딥다크로 숨 쉴 때 실존 인물로 누가 떠오르냐면 개인적으로 배우 샬럿 램플링이 선명해진다. 뇌쇄적인 눈빛에 관능적인 표정 그리고 고혹적인 그녀와 통일된 모습으로 남는달까. 신비롭고 매혹적인 느낌과 잘 어울림. (타입넘버의 소울워터는 뭐랄까 샤론 테이트 배우 외적인 이미지가 상상됨.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낌.)
아워스 바디로션 질감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을뿐더러 딥다크 향과 완벽하게 조화롭다. 쫀쫀한 크림 형태로 피부를 감싸는데 부드럽고 포근하게 토닥여주어 하루를 평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향뿐만 아니라 질감까지 뭐 하나 빠짐없이 최고였다.
대부분 퍼퓸 바디 제품이 묽거나 굳거나 마무리감은 미끌거리며 미묘하게 끈끈함이 남는 그 감촉을 기피하게 되거든. 그래서 퍼퓸 바디 제품들은 제품력까지 만족한 것들 몇 없다. 향 나는 바디로션 중에선 존슨즈 베드타임 (강추. 잔향이 살냄새와 섞이면 내가 내 팔을 베고 잠들고만 싶음.)과 아임프롬 바디로션 그리고 아마도 후 바디로션뿐인데, 아워스 바디로션으로 네이처리퍼블릭이 와 해냈다. 게다가 딥다크... 거기 향수 브랜드가 확 생각나 딥'다크'로 이름을 너무 잘 지어놓음...ㅋㅋㅋㅋㅋㅋ 철저하고 치밀한 노림수인가 싶기도.
아무쪼록 허공에 얽힌 침묵이 공허해질 무렵 짙게 발라주면 좋을 향임. 딥다크 향 말고 다른 향들도 써보고 싶어졌다. 모닝 모스는 물향 이끼향 (물이끼 향), 싱그러운 풀향, 허브향이 공통점으로. 썬스텝은 오후 세 시의 향기, 쌉싸름한 자몽 냄새... 다 궁금하지 않음? 다만 조향사와 함께 한 퍼퓸류라서 그런지 가격대가 네리답지 않게 엄청났다...
하물며 바디로션 디자인은 앞서 언급했듯이 세련된 모습인데(한편, 더프트앤도프트 바디 퍼퓸 미스트 디자인스럽기도 하다) 과연 끝까지 짜서 쓸 수 있을지. 양이 바닥을 기어가는 찰나 내용물 잘 안 나올까봐. 물론 지금은 통이 말랑하여 쭉 잘 나온다.
그래도 이 디자인 모양 그대로 대용량 나와도 될 것 같음. 양 금방 닳는다ㅜ 이 기세를 힘 입어 다른 향들 쭉쭉 내주라. 무화과 살냄새 머스크향 이런 것들. 딥다크 향을 떠나서 모든 방면에서 잘 만든 바디로션이라 여겨짐. 홍보 안 해서 이대로 묻히기엔 심히 아까운 제품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그런 제품이 너무 많아 문제다ㅎ 끝으로 아:워스 바디로션, 하루 끝 사이 얠 바를 때면 오늘 하루를 보답 받는 위로가 참 소중하다.
이 리뷰는 2023.11.07에 최초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