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이 발자국처럼 끝기억 속 맴돌아서
헉슬리 향은 개인적으로 베르베르 포트레이트가 가장 섬세한 결이 느껴져 순간 얼이 멎어가도록 빠져버렸는데 정확히 말하면, 온오프 쏘 희 향기랑 섞어 바를 때 비로소 빈틈 없는 수분기와 함께 향기로움이 배로 터져 숨 고를 때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 이 다음 <블루 메디나 탠저린>은 별안간 시향지 받아 맡아보게 되었다.
퍼퓸 태그도 그렇고 본품 용기도 그렇고 짙은 블루빛을 사파이어 원석만큼이나 강렬하게 내뿜으면서도 조밀한 향기의 형태와 향기로운 온도감 및 향이 표현된 색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블루와 탠저린 둘을 합쳤다고 단순하게 블루오렌지에이드 향이라 일컫기엔 한편으론 오묘하고 오싹한 자극적임이 있다. 또한, 흔히 단내 줄줄 나는 시트러스 계열에 치우치지 않도록 중성적인 우디 냄새로 밀고 당기는 사소한 시소질을 겨눈다. 마치 자연 섭리에 의해 중력을 채 이기지 못한 귤나무처럼. (귤과 탠저린은 다른 종류라지만) 이윽고 귤밭 우거진 귤나무에서 수확하는 과정과 내가 그것들을 유통 받아 한겨울에 귤 까먹는 동안에 손에 밴 귤껍질 그리고 벌거벗겨진 귤 꼭지 초록 냄새까지 상큼한 듯 쌉싸름한 내음이 노골적이다. 경험하지 않은 나무 고동 새겨진 나이테 냄새까지 꼭 흩어지는 것 같다.
내리 떫고 싱그러운 정반대의 풋내를 잘 조향 조색시킨 나머지 나한테도 나만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있을 것만 같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러니까 헉슬리 블루 메디나 탠저린 향에 호흡을 내맡긴 채로 넋놓고 있자니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외국 원서가 파릇파릇 떠오른다. 이처럼 씁쓸하고 항시 자유를 갈망하며 철없는 성장통을 담은, 누구에게나 뻔한데 정작 그게 나라면 뻔하지 않은 향이다. 얼핏 낡아진 책장 곳곳에 묻은 낱장 냄새도 살살 스쳐가다가 그 서재 방 커튼 걷어 창문 열어젖히면 커다란 탠저린 나무가 푸르게 펼쳐진 브라질 풍경 같은 낯선 이국적인 냄새가 은밀히 풍겨오는 듯한 그런 분위기. 그에 다른 향기의 온도도 미지근하게 시원하다.
숲 정원향으로 잘 알려진 모로칸 가드너가 압도적인 판매율을 자랑하지만 최소한 나는 오래 지날수록 감돈 잔향 퀄리티는 블루 메디나 탠저린이 더 좋았다. 세계 여행 중에 자기 발자국 새겨가며 각 나라마다의 검푸른 밤하늘 보면서 맡으면 아니 우리나라 밤 시골 가서 드러누운 상태로 고요히 즐길 시 더 근사할 향이니 한 번 시향만이라도 해보셨으면 한다. 더 나아가 습기 차고 추적추적하게 비 내릴 때 이거 뿌려줘도 축축한 빗물 냄새와도 얼룩지게 잘 뒤섞여지겠음. 처음 도전하실 때는 찡해서 이게 뭐야, 다소 난감하고 난잡한 느낌이 뒤엉킬지도 모르나 곧 이색적인 경험이 들 거다. 머나먼 이국땅 휴양지에 온 것처럼 말이다. 조금만 차분히 기다리고선 그 첫향과 끝향이 맞물리는 지점, 그때 미친 듯이 들이마시길. 담배 한 개비 입에 물고 편 다음 손가락에 깊이 밴 녹진함 못지않게 홀가분한 개운함이 폐부 뚫릴 기세다. 담배 연기가 안개 걷히듯 시야에 갈라지자마자. 해롭지만 이롭고 이로운데 해로운 중독성 시달린 내 몰골이 보인다. 공히 후벼파는 잔향 때문에 내 여린 후각 버틸 수 있음. 그냥 혼자서도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주는 것 같이 홀로서기한 듯한 깊은 울림을 준다.
이 리뷰는 2022.02.28에 최초 작성되었습니다.